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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사고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성공을 향한 여정에서 긍정마인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공 철학과 마인드셋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부와 성공 관련 책의 1일 1필사를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로워지고 비둘기처럼 순수해지거라(마태 10:16)' 뱀은 자신의 일부를 단단하게 굳혀 피부를 만들고 성장해 가면서 그 피부를 벗어던지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습성 덕분에 사람들은 뱀을 무한한 성장과 재생의 상징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뱀처럼 '지혜롭게 되어서' 자신의 단단해진 자아를 상징하는 껍데기, 다시 말해 자신의 환경을 벗어던지는 법을 배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를 놓아주어 그가 가도록' 하는 법, '과거의 자신을 벗어던지는' 법을 배워야 하며, 오래된 자아를 벗어던진다고 해도 뱀처럼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은 몸 밖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역시 자신의 일부이며 자신의 세상과 삶의 모든 상황이 자신의 의식 상태가 밖으로 구현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인간이 이 같은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자신과의 무의미한 투쟁을 멈추고 뱀처럼 옛것을 놓아주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인간은 불멸의 존재다. 그래서 끊임없이 죽어야만 한다. 삶은 창조적이다. 그래서 변화 속에서만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고대에 뱀은 보물이나 부의 수호자로 여겨졌습니다. '뱀처럼 지혜롭게 되어라'라는 경고는 인간에게 우리 몸이 가진 예민한 힘, 즉 상상력을 일깨우라는 조언입니다. 말하자면 뱀처럼 자신의 한계를 깨고 나아가 더 성장하고, 과거의 자아를 버린다고 해도 죽지 않으며, 옛 것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것을 입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소망을 실현하고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뱀은 주 하느님이 만드신 그 어떤 들짐승보다 영리(창세기 3:1)'했습니다. 상상력 또한 주 하느님이 창조한 하늘나라의 그 어떤 창조물보다 영리합니다.
'헛된 것에 굴복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다. 그가 우리로 하여금 희망 속에 헛된 것에 굴복하게 하였고 우리가 희망에 의해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보는 것을 누가 바라겠는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란다면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로마서 8:20)'
외부적, 물리적 감각에 의존하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내적이고 영적인 상상력에 의존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환경과 완전히 결속되어 있다면 '뱀처럼 지혜롭게'라는 임무는 쓸모없을 것입니다.
환경에 묶여있다면 감각이 보여주는 증거로부터 의식을 철수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상태가 새로운 환경으로 단단히 굳어질 거라는 바람 속에서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 또한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육의 몸이 있고 영의 몸이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5:44)' 상상이 이루어지는 영적인 몸은 외부 환경에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적인 몸은 감각과 환경이라는 외적인 인간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몸이 상상력이 만들어 낸 환영에 충실하다면 환경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성서 구절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거처를 준비하러 가니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거처를 준비하고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맞이하여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할 것이다(요한 14:2)' 이 구절에서 말하는 '너희를 위해 준비된 장소'가 꼭 물리적 공간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건강, 부, 친구처럼 당신이 이 세상에서 바라는 어떤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곳'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먼저 당신이 실제로 그곳에 있고 실제로 그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할 것인지 가능한 한 실제처럼 그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몸을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실제로 그 '장소'에 있다고 상상하고 그 장소에서 보고 듣고 행동할만한 모든 것들을 상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상하는 것들이 실제처럼 느껴질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실제처럼 느껴진다면 그곳이 당신의 외부나 육체적인 자아를 위해 준비된 새로운 환경입니다. 이제 눈을 뜨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그곳'은 준비되었고 당신이 상상 속에 있었던 곳에 당신의 육체도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상상했던 상태가 어떻게 물리적으로 현실에 실현되는지는 현실의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상상의 상태에서 현실의 상태로 돌아왔지만, 당신의 영적인 몸은 두 상태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사건의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익숙한 현실의 환경에서 눈을 뜨면 당신이 실제로 그곳에 있었고 그 상태가 진짜였다는 신기한 느낌은 사라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육의 몸이 있고 영의 몸이 있습니다'라는 성서의 구절처럼 두 가지 자아가 생기게 됩니다. 현실의 당신이 이러한 경험을 한다면 당신은 자동으로 현실과 상상의 상태를 잇는 다리를 건너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상상 속에서 준비된 그곳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인간은 이중적 존재이며 인간 내면의 상상력이 미래의 상태에 머물렸다가 현재 상태로 돌아오면 두 상태를 연결하는 다리가 만들어진다는 이러한 개념은 인간의 존재와 현상의 특성과 원인에 대한 보편적인 견해와 격렬하게 충돌합니다. 또한 인간의 존재와 시간, 공간, 물질에 대한 현대사회의 일반적인 생각을 크게 흔들어 놓습니다.
인간이 상상을 통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현실의 삶을 결정한다는 개념은 단단할 것 같은 현실 세상이 마음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결론을 낳습니다. 물론 이러한 개념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에 거부했던 개념들도 나중에는 받아들여졌습니다. 처음에 내린 판단들이 경험을 통해 수업이 뒤집히는 것을 보면서 화이트헤드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내일 진리로 입증될지 누가 알겠느냐?'
인간 내면에 잠들어 있는 창조의 힘은 깨어나야 합니다. '잠든 자여 깨어나라. 죽은 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라(에베소서 5:14)' 외부 세상이 당신이 살아가는 삶의 조건을 만든다고 말하는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죽어있는 과거로부터 일어나 새로운 환경을 창조하십시오.
'그대가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영이 그대 안에 머문다는 사실을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고린도전서3:16)' 당신 안에 머무는 하느님의 영은 당신의 상상력입니다. 하지만 그 상상력은 잠들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당신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감각의 장애물을 뛰어넘으려면 잠들어 있는 상상력을 깨워야 합니다.
당신이 '뱀처럼 지혜롭게' 되었을 때 당신 앞에 펼쳐질 무한한 가능성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당신은 경험하고 싶은 이상적인 조건과 살고 싶은 이상적인 환경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들을 상상 속에서 감각적으로 생생하게 느껴질 때까지 경험한다면 뱀이 피부를 단단하게 만들 듯 당신도 상상 속에 느꼈던 이러한 상태들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상상 속 상태들이 단단해지만 '뱀이 껍데기를 벗어던지듯' 당신 또한 감각의 껍데기를 쉽게 벗어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인 풍요로운 삶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는 얻어질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형상을 원하셨기에 인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창조물 속에서 하느님의 영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 작업이 어떤 형상으로 나타나는지를 보고 그 형상이 좋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그 형상을 넘어 계속 성장을 거듭해나가더라도 말입니다.
그분은 기쁨이 커지는 방을 지나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끝으로, 황홀함이 고동치는 곳으로 이끄신다. 그분의 손길은 무한하시니 모든 끝에 그 너머를 더하시네.
'내가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끌어 올 것이다(요한 12:32)' 만약 당신이 감각의 증거에서 당신이 소망하는 의식 상태로 들어 올려져서 그 상태가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무른다면, 당신은 주변에 그 상태를 만들어 낼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볼 것입니다.
하지만 상상하는 삶이 진정한 삶이고,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느끼는 것이 현실도피자의 도피처나 위안이 아닌, 보다 풍요로운 삶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사람들을 어떻게 설닥할 것인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기쁨이 커지는 방을 지나'라는 구절처럼 상상의 영역 속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려면, 다시 말해 세상을 감상하고 즐기려면 상상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꿈을 꾸고, 꿈을 실현하고, 더 나아가 그 꿈을 초월해 끝없이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얻기 위해 현재의 삶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며 자기만족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 곳의 아내와 같습니다. 그와 반대로 육체를 영적이지 않다고 거절하고, 육체를 가진 존재를 하느님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거부하는 사람들 또한 위대한 신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시니, 그 신비가 위대하도다'
당신 삶은 오직 한 가지, 의식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모든 것은 당신 의식에 달려있습니다. 상상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의 의식 상태를 사실로 받아들이면 그 상태는 스스로 형체의 옷을 입기 시작합니다.
뱀의 피부가 단단히 굳어가듯 당신의 의식 상태 역시 단단한 형체를 갖추게 됩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 믿음을 가지고 집중해야 합니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동해서는 안 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가 모습을 갖추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래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한 번 성공하고 나면 그 이후로는 인내가 수월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이해를 얻었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해는 인내의 비결입니다. 블레이크의 말처럼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 기쁨과 즐거움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올 것입니다. 당신이 보고 싶은 것을 상상하고 그 상상이 사실이라고 계속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상상하는 대로 형체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모든 것들은 상상의 힘으로 만들어집니다. 상상력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안에서 바깥으로' 우주 만물의 법칙입니다. '안에서와 같이 밖에서도' 인간은 진리를 찾겠다고 밖으로 눈을 돌리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찾으려면 안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진리는 우리 안에 있으니, 밖에서 솟아나지 아니하더라.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 한가운데 깊숙한 곳이 있으니, 그곳에는 진리가 충만하더라. 깨달음이란 밖에 있다고 믿는 빛을 위해 입구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갇힌 찬란한 빛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더라. - 로버트 브라우닝, 파라켈수스 -
'너희는 신들이며 너희는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이니라(시편 82:6)'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마태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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