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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필사] 세상은 내면의 의식 상태가 구현된 것이다

by 부가람 2025.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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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긍정적인 사고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성공을 향한 여정에서 긍정마인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공 철학과 마인드셋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부와 성공 관련 책의 1일 1필사를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의식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의식이 단 하나의 유일한 실체라는 것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성서는 전체적으로 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성서 속 이야기들은 직관적인 이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창조의 비밀과 탈출의 공식을 동양의 상징주의를 빌어 신비스럽게 드러내 줍니다. 성서는 창조의 원인과 방법을 글로 보여주려는 인간의 시도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식이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원인이자 창조주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늘날 성서라고 알려진 상징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창조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위대한 책을 이해하려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지능과 읽은 내용을 해석하고 이해하기에 충분한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성서가 왜 상징적으로 쓰였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습니다. 왜 모든 사람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쉽게 쓰이지 않았는지 궁금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 같은 질문에 세상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상징적으로 말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서양의 언어는 서양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전달됩니다. 하지만 서양의 언어는 동양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예를 다음과 같은 동양의 가르침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마가 9:43)' 여기서 말하는 손은 단순히 신체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표출된 형체를 가진 모든 것을 말하는 것으로, 당신에게 세상의 해로운 모든 형체로부터 등을 돌리라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양 사람들이 '이 은행은 바위 위에 있다'라고 말하면 동양 사람들은 그 뜻을 오해할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에게 '바위 위'라는 표현은 파산을 뜻하지만, 동양 사람들에게 '바위'는 믿음과 든든함을 상징합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이니라.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그 집을 강타해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않았으니 반석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니라(마태 7:24)'

 

성서가 전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서가 동양적 사고방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서양의 사고방식으로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생물학적 측면으로 본다면야 동양인과 서양인은 다르지 않습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사랑과 증오, 갈망과 열망, 야망과 욕망은 같습니다. 하지만 표현 방식은 매우 다릅니다.

 

성서의 비밀을 풀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창조주의 상징적인 이름, 모두에게 '여호와'라고 알려진 이름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네 개의 히브리어 문자, 욧, 헤, 바, 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로 이 이름 안에 창조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첫 번째 문자인 욧은 절대적인 상태, 혹은 조건 없는 의식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규정되지 않은 의식이며 모든 창조물 혹은 조건화된 의식이 비롯되는 총체입니다. 욧은 오늘날의 아이엠, 다시 말해 조건 없는 의식입니다.

 

두 번째 문자인 헤는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 소망, 상상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헤는 하나의 생각, 확실한 내면의 상태, 혹은 마음에 그린 명확한 그림을 상징합니다. 

 

세 번째 문자인 바는 소망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의식인 창조주(욧)과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인 관념(헤)을 통합하고 결합하는 행위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창조주와 관념이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 상태를 단단히 정하는 것, 원하는 상태로 자신을 의식적으로 규정하는 것, 현재 당신이 상상했던 혹은 목표로 정했던 것이 되었음을 자신에게 사실로 각인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바의 역할입니다.

 

바는 소망하는 의식과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를 단단히 못으로 박아 고정시키고 하나로 묶습니다. 이러한 결속 혹은 접합 과정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것을 마음속에서 현실로 느껴야 이루어집니다.

 

네 번째 문자인 헤는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합의가 밖으로 구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욧, 헤, 바는 내면의 의식 상태를 그대로 혹은 비슷하게 바깥세상에 구현해 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현된 인간, 혹은 세상이 바로 헤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문자인 헤는 내면의 상태인 욧, 헤, 바의 모습을 그대로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조건화된 의식은 자신의 모습을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끊임없이 드러냅니다. 세상은 내면의 의식 상태가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창조주와 내면의 상태가 밖으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아들(헤)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 아들, 어머니(욧,헤,바) 다시 말해 성삼 위의 증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삼 위는 사람이나 어떤 현상처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날 때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조건 없는 의식(욧)은 당신이 소망하는 상태(헤)에 형상을 부여하거나 소망하는 상태를 상상합니다. 그런 다음 상상하는 상태가 현실이 되었다고 느끼고 믿음으로써 소망을 이루었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당신과 당신이 소망하는 것의 의식적인 결합은 바, 다시 말해 느끼고 믿는 능력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저 바라는 상태가 되었다는 생각을 사실로 받아들여 실제로 그 상태에 있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욧, 헤, 바로 상징되는 내면의 상태는 헤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내 창조자의 이름과 본성인 욧, 헤, 바라는 여호와의 신비를 완성합니다.

 

욧은 인식하는 것이고, 헤는 무언가를 인식하는 것이며, 바는 당신이 인식했던 대로 인식하거나 당신이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 되었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문자인 헤는 욧, 헤, 바 혹은 당신이 인식하고 있는 모습대로 만들어진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세상입니다.

 

'하느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창세기 1:26)' 이는 우리가, 다시 말해 욧, 헤, 바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내면 상태 그대로 밖으로 드러난 세상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의식이 머무는 내면의 의식 상태가 바깥으로 구현된 것입니다. 성서를 이해하려면 먼저 의식이 단 하나의 유일한 실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의식이 단 하나의 유일한 실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서 속 이야기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창조의 비밀을 상징적인 언어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이름이 가진 진정한 의미입니다.

 

모든 것이 이 이름에 의해 창조되었고 이 이름이 없었다면 그 어떤 것도 창조될 수 없었습니다.(요한 1:3) 먼저 당신은 인식할 수 있는 존재이며 당신은 무언가를 인식합니다. 그런 다음 당신이 인식했던 대로 자신을 인식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 객관적으로 구현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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