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긍정적인 사고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성공을 향한 여정에서 긍정마인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공 철학과 마인드셋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부와 성공 관련 책의 1일 1필사를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삶의 현장에서 단 하루라도 피땀으로 서 있어본 적이 있다면 가득 들어 있는 주머니가 비어 있는 주머니보다 무겁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비어 있는 주머니는 태산보다 더 무겁다. 돈이 인생을 더럽혔다고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다. 돈에 대해 절망했거나 무력한 이들이 꾸며낸 거짓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돈 버는 방법을 잘 알지만, 돈을 옳게 쓰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이 돈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돈은 불가사의한 마력을 갖고 사람을 뒤흔든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물건들은 써보면 그 가치를 알 수 있지만, 돈은 만들어보지 않고는 그 가치를 알 수 없다.
'쓸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바르게 쓰는 법까지 알고 있으면 더욱 좋다'라는 격언이 있다. 돈이 우리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두말할 필요없이 우리 인간은 분명 돈보다 우월하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속담은 정곡을 찌르는 명언이다.
미드라시(midrash, 유대교 성서주석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두 사람이 찾아와 서로 다른 말을 했다고 가정하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고, 한 사람은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다. 당신은 과연 어느 편의 말을 진실한 말로 믿을 것인가?
답변은 이렇다. 부자라고 해서 언제나 거짓말만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올바르게 살아간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부자라고 해서 참말만 하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거짓말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돈이란 결코 모든 것을 좋게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들을 썩게 하지도 않는다. 돈은 당신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 진실로 인간다운 것은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을 지배하는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돈이란 어쨌든 사람보다는 아래에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반면에 돈을 천시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분명히 말하자면 이 또한 옳지 않다. 돈이란 그 쓰기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다른 문제는 없다. 우리는 돈을 소홀하게 여기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돈은 추악하다며 돈을 소홀하게 취급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돈을 두려워하는 사람인 것이다.
돈이란 오랜 세월 동안 금이나 은 등의 금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차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여름에 동전에 손을 대어 보면 역시 차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은 이 귀한 금전을 손에 움켜쥐어 거기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부자들은 돈을 대부분 궤짝이나 은행에 모아두기 때문에 사람과의 접촉이 없어 금속만의 싸늘함을 늘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돈이란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 따라 따뜻하게도 할 수 있고 본래대로 차디차게 만들 수도 있다. 이 모두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유대인들은 일부의 중세 기독교 시대에서처럼 인간의 몸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를 주지 않는다. 중세에서는 인간의 몸이란 모든 욕망의 원천이므로 인간의 육체에는 죄가 많다고 보았다. 유대인들은 이와 반대로 사람의 몸은 맑은 정신이 담긴 그릇이기에 이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여 육체 자체가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돈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도 이와 같다. 돈 그 자체에서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세의 기독교인들은 돈은 악의 원천이고 죄악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태도는 돈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육체나 돈이 인간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아 그것이 우리 인간을 지배한다고 여긴 탓으로 돈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재물이 많으면 그만큼 걱정거리도 늘어나지만, 재물이 전혀 없으면 걱정거리는 그보다 몇백 배 더 많아진다. 돈을 비롯한 물질들을 비천한 것으로 보고, 큰 재물을 소유하는 것을 죄악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특히 중세에 그랬다.
그렇다면 왜 중세 기독교에서는 재물을 멀리하고 있는가? 그 시대에는 청빈이 미덕이며, 돈이나 여자관계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 자랑이 될 수가 있었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물질의 풍요와 쾌락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풍요과 쾌락에 빠지면 자기 스스로가 그 물질에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항상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율법에 따라 스스로 규율을 지키고 있으며, 그 믿음에 따라 어떠한 풍요나 쾌락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율법을 지키며 스스로 규율을 확립하므로 어떠한 부나 쾌락도 쉽게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만능의 것이라면 의복 또한 만능이다. 돈이 많이 있다고 해도, 그 돈으로 인간의 본질을 바꾸어놓을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고 있어도 옷 속에 묻힌 인간까지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사람 자신뿐이다. 하지만 돈이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다. 몸에 잘 맞는 좋은 옷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풍요로운 물질만 숭배하고 따라서는 안 된다. 그러한 사람이 우습게 보이는 것은 물질만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숭배물에 가깝게 하고 싶어 하며, 또 그것에 쉽게 물들어간다. 그러므로 물질에 빠진 사람은 그 자신마저도 물질이 되고 만다.
인간은 옷을 위해 살거나 돈이나 물질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반대의 경우가 된다면 인간은 한낱 옷걸이에 지나지 않는다.
유대인 사회에는 청빈에 대한 관념이 중세 기독교나 일부의 동양처럼 강력하지 않았다. 그들은 돈을 선이라고는 주장하지 않지만 '돈은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라고 생각한다. 인간 생활에서는 돈의 힘으로 많은 것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가난은 문학 속에서는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가정에서는 고통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한 가난함을 설교를 통해 들으면 한없이 맑고 깨끗한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의 우리 생활에서는 오직 비참할 뿐이다.
유대교에서는 가난함을 찬양하는 설교 같은 건 아예 없다. 어쨌든 우리에게 유용한 것이므로 가능하다면 많이 가지는 것이 좋다. 그 뒤에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도 돈을 소유한 사람의 지혜에 달려 있다. 돈이 없는 가난함을 청빈의 미덕으로 찬양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나 옳지 않을 뿐 아니라 분명한 위선이다.
돈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만능도 아니다. 돈이 좋게 되고 나쁘게 되고는 돈을 소유한 인간에게 달려 있다.
유대인들은 생활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특히 돈에 대한 균형감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이 돈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의 핵심은 돈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사] 감사하는 마음의 끌어당김 (2) | 2025.03.30 |
---|---|
[필사] 시간과 돈의 끌어당김 (0) | 2025.03.29 |
[필사] 부의 끌어당김 (2) | 2025.03.27 |
[필사] 부자가 되는 지혜 (0) | 2025.03.26 |
[필사] 부자가 되는 공부 (0) | 2025.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