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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필사] 네 가지 신비한 경험

by 부가람 202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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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긍정적인 사고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성공을 향한 여정에서 긍정마인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공 철학과 마인드셋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부와 성공 관련 책의 1일 1필사를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이야기에서 상상력은 의식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상상 속에서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연극을 구상하고 상상력을 이용해 그 연극에 직접 참여하여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율법을 지혜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는 것만으로 하느님 앞에서 의로워질 자는 없습니다 (갈라디아 3:11)' 많은 사람들이 상상력을 이용한 삶의 변화에 관심을 보이지만 그러한 상상력의 기반이 되는 믿음, 다시 말해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하도록 이끄는 믿음의 틀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네 몸에서 나올 네 아들을 네 뒤에 세울 것이니라.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니라(사하 7:12-14)'

 

사람들은 하느님이 우리의 몸에서 '혈통으로, 육신의 의지로, 인간의 의지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난' 아들을 내어주시겠다고 한 약속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약속보다는 법칙을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공동체는 초창기부터 이러한 기적적인 탄생은 모든 인류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밝혀왔습니다. 요한복음 3장 7절은 '그대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사 자신을 내려놓는 행동을 통해 인간을 창조주인 하느님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몸소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같이 되셨으니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어 먼저 인간이 살아 있는 존재가 되고 그다음 생명을 주는 영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으니 나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 이제 내가 육신으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갈라 2:20)' 하느님은 몸소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심지어 인간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맞고 인간의 해골을 의미하는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 만들기 위해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 인간의 무덤에 누웠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죽음을 잠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느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간이 하느님이 되기 위한 놀랍고도 엄청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면 그 어떤 인간도 의식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문턱을 넘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느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 안에 신비하고 놀라운 상상력으로 살아 있습니다.

 

인간은 상상력이다. 하느님은 인간이고 우리 안에 존재하며 우리도 그 안에 존재한다. 죽지 않는 인간의 몸은 상상력, 다시 말해 하느님 그분이다. - 블레이크 -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부활할 때 우리는 하느님이 되고 하느님은 우리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활이 우리 본성을 깨달음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면 우리 안에서 모든 불가능한 것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비밀입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명확하게 인식하지만, 상상의 창조물인 인간은 하느님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하느님은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이 같은 기적을 만들기 위해 하느님은 죽음을 선택해야 했고, 다시 인간으로 부활해야 했습니다. 이 일을 블레이크만큼 제대로 잘 표현한 이도 없습니다. 블레이크는 마치 그리스도가 말하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너희는 살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너희는 다시 일어날 것이고 너희는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를 위해 죽은 적 없는 이를 사랑할 수 없고 너희를 위해 죽은 적 없는 이를 위해 죽을 수 없다. 그리고 만약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죽지 않고 인간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내어주지 않았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인간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이 마침내 하느님으로 부활하기를 바라며 인간이 되었고 자신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었기에 인간의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마태 27:46)'

 

하느님은 자신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한 사람의 안에서 깨어나면 그 사람은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어찌하여 우리는 여기에 서서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께 구하지 않고 우리 밖에 계신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가?(블레이크)'

 

죽음에서 부활한 첫 번째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다시 말해 잠든 이들 가운데 첫 열매이며 죽음으로부터 처음 태어난 자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위해 죽음을 맞이했고 이제 인간의 모습으로 죽음에서 부활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죽은 아버지를 부활시킵니다.

 

인간을 대표하는 아담 안에 하느님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깨어납니다. 잠에서 깨어날 때 창조물인 인간은 창조자인 하느님이 되어 진심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다 (유대교 교리인 '아돈 올람' 중에서)'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여 스스로 인간이 되고 자신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처럼 인간도 하느님을 사랑하여 스스로 하느님이 되어 하느님의 삶, 다시 말해 상상력을 통해 살아가야 합니다. 인간을 하느님으로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창조행위는 성서에서도 드러나 있습니다.

 

성서는 매우 일관된 이미지와 상징적 비유를 전달합니다. 구약성서에는 신약성서의 예언과 가르침이 숨어있고 신약성서에는 구약성서의 예언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법칙과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성서는 역사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고통의 용광로를 믿음으로 이겨내도록 이끌어 하느님의 약속을 이루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내면에 있는 하느님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서 속 인물들은 과거 속에 살지 않고 무한한 상상 속에서 삽니다. 그들은 영혼의 다양한 영적 상태를 의인화한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죽음을 거쳐 새로운 영적 생명으로 깨어나는 인간의 영적 여정을 상징합니다.

 

구약성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약속을 말합니다. 신약성서는 이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말합니다. 성서의 핵심 주제는 한 아이의 탄생에 관한 직접적이고 개인적이며 신비한 경험입니다.

 

성서는 반드시 우리의 내면에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것이고 당신은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과 모든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까지, 이렇게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여전히 약속된 시간, 지정된 시간에 도달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버지 하느님임을 드러내 줄 다윗의 아들, 다시 말해 당신의 아들을 찾는 여정은 참으로 길고, 광대하고, 혹독할 것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성취가 가까워지고 있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기다리십시오. 약속된 시간이 늦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네빌 고다드 -

 

'주님께서 능히 하시지 못할 일이 있겠느냐? 봄이 오면, 약속된 시간에 내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고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창세기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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